RPG

아크로폴리스 9화

夢影 2011. 1. 17. 15:14
아크로폴리스는 거대한 학원도시. 세계 제일의 대학인 반젤라스 대학이 있는 학원도시 국가입니다.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유학생 때문에 대학 내부에서도 치열한 정치 싸움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딘가에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 이 이야기는 그런 어두운 면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튼 성적이 필요한 소년소녀들이 자원 봉사를 하는 이야기니까요.

캐릭터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사령술 오타쿠에 외톨이 단점 냉혹 단점이 있는... ㅡ,ㅡ;; 엄청나게 비사회적인 소녀의 갱생기입니다. 일단은.

느긋한 학원 청춘 성장물이라서 손발은 오그라들고 새콤달콤한 맛이 있습니다.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랄까요. 
부잣집 따님이면서도 온실속에서 키워지는 걸 거부하고 스스로 상인의 길을 가겠다며 나설 정도로 강인하게만 여겨지는 아가씨에게도 사실 소꿉친구를 짝사랑(이번 화에서 짝사랑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지만 말입니다!)하고 있으면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귀여운 면모가 있고요.
덩치 커다랗고 조금 딱딱할 것 같은 용병왕의 아들은 사실 꽤 유쾌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소박한 성품이었습니다. 제 친구와 맨날 자기가 잘났다며 자존심 대결을 하기도 하고요. 아버지의 이름에 지지 않기 위해 항상 애를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버지가 아프셔서 떠나가게 되긴 했지만 아마 나중에 만났을 때엔 분명 멋지고 쾌활한 용병이 되어 있겠죠.
말도 잘하고 똑똑하고 비꼬기도 잘하고 자존심 강한 소년이 있습니다. 그는 툭하면 다른 사람들과 시비가 걸리지만 사실 무척 다정해서 아무 말 없이 주변에 있는 녀석들을 챙겨주는 면이 있습니다. 고양이라든가, 어비스라든가, 에스벤이라든가... 그러고보니 그가 챙겨주는 대상들은 대체로 괴짜에 주변에 동화되지 못하는 녀석들 뿐이군요. 이것은 그가 천민 출신으로서 소외된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요?

 여기서는 느긋하게 캐릭터를 개연성 있게 성장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진짜 학원물, 진짜 청춘 성장물이니까요! 비사회적인 특성을 살리면서도 공통 시나리오나 각 개인의 시나리오에 방해가 되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는 균형을 찾는 것이 이 캐릭터에 대한 플레이어의 목표입니다. 지금까지는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다음 플레이 때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는 생각했는데.. 항상 마지막에 다시 물어보는 걸 잊네요. 플레이하고 나면 역시 평일이라 그런지 미칠듯이 졸려와서... ㅡ,ㅡ;; 그래도 플레이 도중의 반응은 다들 즐거워들 하시는 것 같아서 안심하고(응?) 즐기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사회성을 만들어주기 위해 여지(외모+1에 동정심 유발의 장점)를 두었기 때문에 본인은 쌀쌀맞고 음침하고 아무튼 인간따위 질색이라고 하는데 주변에서 내버려두지 않고, 대체로 그냥 귀엽게들 봅니다. (그렇게  마음껏 휘둘러달라고 마스터에게도 주문했습니다. ㅋ) 양부가 남겨둔 연구실을 지키며 리치가 되는 방법(그러나 이 세상에 리치는 없긔)을 찾을 때까지 사령술을 계속해서 연구하고자 하는 어비스는 연구실을 지키려면 장학생 신분을 유지해야 하고 장학생 신분을 유지하려면 일정 이상의 사회활동 점수가 필요하고 사회활동 점수를 채우려면... 이 봉사대의 의무를 수행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확고한 목적이 있으니 아무리 어비스가 여기서 뻗대고 싶고 비사회적으로 굴고 싶고 사람 많으면 도망가고 싶고 맘에 안들면 저주를 퍼붓고 좀비를 일으키고 혼령들을 불러제끼고 싶어도... 차마 못하고 참으면서 시끄럽고 귀찮은 인간들에게 휩쓸리고 마는 것이죠. 그녀는 그래서 최대한 봉사대 의무를 최단시간에 해치우기 위해 특유의 합리적이며 과감한 선택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하는 선택에는 살아 있는 사람의 감정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상은 곧잘 틀어지고 말죠. 만약 혼자였다면 분명히 봉사대의 의무를 제대로 해낼 수 없었을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있기에,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심지어 어비스같은 오타쿠의 관점 마저 포용해주는 대원들이 있기에 함께 이뤄나갈 수 있는 거죠. 이렇게 봉사대 활동을 하다보면 플레이어의 목표인 캐릭터 목표의 변경(... 리치는 안된다고 그러니까...)을 이루는 것도 꿈만은 아닐 거 같습니다!

아무튼 이번에 이렇게 이야기가 길어지는 건 이번 화가 어비스에게 상당히 특별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이녀석이 가장 싫어하는 '축제'... 도대체 인간들이 모여서 우글우글 대기만 하는 게 뭐가 재밌다는 건지, 이 기간에는 수업도 안하고 쓸데없이 밤늦게까지 떠들며 돌아다니는 인종들이 가득해서 안그래도 신경이 날카로운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봉사대에서는 노점 단속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톨이 단점은 냉혹 단점을 이겨낼 정도로 커서... 인파에 시달리던 어비스는 기어코 냉담한 포커페이스를 잃고 말았습니다. 평소에도 봉사대 활동을 좋아하지 않았고, 속으로는 잔뜩 투덜대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굳이 드러내지 않았고 사람들과 말을 섞을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던 그녀가, 피로와 짜증 때문에 드디어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어 말하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심지어 쫓아다니는 게 귀찮고 피곤해서 딱 한번 파트너가 되어 주면 쫓아다니길 그만 두겠다는 말에 넘어갔다가! 아 글쎄! 사랑하는 로브와 후드와 지팡이도 빼앗기고 이상하고 휑한 옷이 입혀진 채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인간들이 가득한 곳에 내던져지고 말았지 뭡니까. 정말 끔찍한 기억이었어요. 그래도 저 때문에 놀란 건 아는지, 레번이 다른 사람들이 다가오는 걸 막아줘서 그나마 살만하긴 했지만... 귀엽다느니 뭐니 하지만 죽으면 어차피 다 썩어버릴 걸. 뼈가 귀엽다면 그건 인정. 아니아니 이럴 때가 아니라... 죽기가 아깝다. 라는 말이 좀 마음에 걸렸습니다. 리치가 될 수만 있다면,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말이죠! 죽으면 이런 허례허식도 필요 없이 진정한 영원에 도달하는 거 아닙니까! 라고 생각했던 어비스에게 시한부의 삶을 가치있게 쓰는 법을 이야기한 레번의 말은 나름 고민거리였습니다. 게다가 춤이랍시고 한 건 무슨 마라톤 뺨치게 체력을 소모시켰고 그 마지막에 그자식이 어비스의 입술에 주둥이를 들이대기까지 해서 어비스는 그야말로 쇼크! 17년 인생에 이렇게 정신 없던 건 요 며칠 간이 처음일 듯합니다.

죽음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 삶이라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가치있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리치가 되어 영원을 손에 넣는 것만이 유한한 삶에 대한 유일한 대응법이라고 생각해왔던 어비스에게 레번과 함께한 축제의 하루는 피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꽃처럼 반짝이는 여운이 남는 이상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길게 지속될 캠페인이니까 아직은 여지만 남기고 말렵니다. 어비스는 아직 변하기엔 일러요. 이날 어비스가 그토록 솔직하고 평소에 비해 더욱 귀여울 수 있었던 것도, 축제의 마력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내일부터는 또 마찬가지의 삶이 계속되겠지만 어비스도 이제는 조금쯤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열번 중에 한번이라도 돌아보게 되었다면, 플레이어는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