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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엘디오르

사라사

사라스들의 유일한 도시인 사라사는 깊은 숲의 깊고 깊은 곳, 생명의 산에서 기원한 은총의 강물이 흐르고 흘러 갈대치 강과 하나로 만나는 두물머리에 있는데, 두 강이 만나면서 켜켜이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습지는 물에 강한 갈대며 우람한 나무들을 길러냈고, 물이 빠질 때만 그 뿌리가 지면에 드러나는 나무 위에는 갈대를 엮어 지은 사라스들의 가옥들이 울창한 잎새와 줄기 사이로 보일락말락 틈틈히 자리잡았고, 몸 날래고 가벼운 숲의 종족들은 갈대로 엮인, 여느 에쿠트, 그러니까 인간이라면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 법한 공중의 흔들리는 갈대 다리를 성큼성큼 날듯이 지나며 나무 위 건물들을 오갔는데, 그것이 운하를 타고 처음 온 사람에게는 꼭 요정의 나라처럼 신비롭게 여겨지곤 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욱 요정의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 준 것은 두 강이 만나는 지점, 그 정확히 한가운데에 뿌리를 내린 신목, 그리고 거기 가지 사이에 자리잡은 사라스들의 대신전, 벨로얄 신전이었으니, 장정 열댓 명이 서로 손을 뻗고 둘러서도 맨끝 사람과 앞 사람의 손이 서로 마주 닿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기둥을 가진 신목은 그 아래가 캄캄하여 밤처럼 느껴질 만큼 높고 또 잎이며 가지가 무성하여 정말로 세계의 기둥이라도 된 것처럼 경이감을 주었고, 그 위,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곳에 자리잡은 신전은 나무에 비하면 보잘것 없어 보여도 그 안에 들어서면, 에쿠트로서는 올라가기도 어렵겠지만, 일단 들어서기만 하면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장관이 나타나니, 반투명한 재질의 갈대로 신전을 지은 까닭에 아래의 캄캄함과는 반대로 햇빛을 가득 담은 찬란함으로 반짝이는 데다가 짙푸른 숲과 그 너머 붉은 사막으로 느릿느릿 흘러드는 갈대치 강의 유려한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고, 신전 안을 둘러보자 치면, 화려한 문양의 태피스트리들이 벽마다 가득 매우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투명한 늪 갈대를 쪼개고 색색의 고운 염료로 물들여 만든 실로 자아낸 것이라 여느 것과 달리 얇고 광택이 나고 햇빛을 받으면 너른 바닥에 제 문양을 비추어 알록달록 물들이곤 하였으니 이것은 그저 꾸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세히 살피면 천지창조로부터 물의 신인 벨로얄이 태어나 숲을 일구고, 인간이 나고 종족이 갈리고 나라가 생기는 그 모든 천태만상이 그림으로 나타나 있으니, 이는 이쪽 땅끝부터 저쪽 땅끝까지 모든 흘러가는 이야기를 듣고 걸러 씨실과 날실로 역사를 자아내는 것이 이 신전의 사제들이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라, 아름답기로 유명한 사제왕께서 풍월에 들은 이야기를 풀어내면, 각 마을에서 온 어린 사제들, 성인식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기 전에 신전에 머무르며 교육을 받던 어린 사제들은 베틀앞에 앉아 치걱치걱 치걱치걱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자아내는데 그 소리 또한 바람에 스치는 잎소리며 물소리며 물고기 뛰어오르고 새 우짖는 소리만큼 아스라하여 그것을 이들은 신께 바치는 노래라 부른다.